[열린광장] 차별 금지는 특권이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만이 보편적 진리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이외로 많다. 나 자신이 진리의 편에 서 있는 이상 나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각에 지나지 않으며 스스로 내로남불의 자가당착에 빠져 내재하는 논리적 모순을 에둘러 외면하는 것이 된다. 객관성이 결여된 맹목적 아집이다. 치국의 근본에 관한 제자 자공의 질문에 답하면서,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는, 정부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국방보다 우선한다고 공자도 밝혔듯이 이 세상에 생존권보다 더 근본적인 가치는 없다고 하겠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 하긴 하지만, 일상에서 가치 판단을 위한 최고의 규범으로서의 윤리 도덕적 잣대가 배제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념을 앞세운 정의 사회의 구현이라는 명목 아래 자유·평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가 희생 될 수는 없다. 나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상대편을 악마화(Demonization)하는 짓이 정의로 포장되어서도 안 되며, 힘 있는 자가 자신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미화하는 수단으로 정의를 표방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되겠다. 차별 감각은 타고나는 것인가,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인가. 상대에 대한 경계심 우월감·혐오감 등이 인종차별,성차별, 종교차별 등 온갖 차별(갑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문화적 배경이나 가치관이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과도 자연스레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주 삼라만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사회 규범도 세월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자연의 섭리에도 예외적인 변수는 있는가 보다.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가족과 갈등을 겪는 성전환자 (또는 동성애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性)을 버리고 원하는 성을 선택해야 하는 야릇한 입장에 놓여 있다. 비록 그것이 자연의 원리에 벗어나는 것이며 나 자신의 가치관과 상치된다 할지라도, 엄연히 전개되고 있는 이 같은 현상을 애써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한 민족을 개량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으로 유전적 결함을 도태시키고 우량한 유전자를 보호 육성해야 한다는 우생학적 주장이 20세기 초반에 세계를 휩쓴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약자(장애인 또는 성 소수자 포함)의 생존권을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문명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마이너리티에게도 주어져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으며, 시민의식의 진화는 약자의 인권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의 당위성을 인정할 것으로 믿는 터이다. 일찍이 존 스튜어트 밀도 그의 역작 자유론(On Liberty)에서 소수자의 이익이 존중되는 것이 자유주의의 본질이라고 갈파한바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부연할 필요를 느끼는 것은 평등사상에 기초한 ‘차별 금지’를 ‘특권의식’과 혼동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차별(Discrimination)을 금지하는 것이지, 특권(Privilege)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차별 금지의 목적은 부당한 행위로부터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있는 것이지 약자에게 보복성(?) 특권을 부여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 구조에 유전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차별 감각이 법제화만으로 단기간에 뿌리 뽑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류애적 가치관의 재정립을 위한 장기적이고 꾸준한 노력(교육)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라만섭 / 전 회계사열린광장 차별 금지 차별 금지 인종차별성차별 종교차별 차별 감각